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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책

책 정유정 [완전한 행복]

by S나라라2 2024.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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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챕터 시작이 아이의 관점으로 시작된다. 아이가 싸이코패스인 엄마와의 일상을 묘사하는데 그게 너무 찝찝하고 기분이 좋지 않다. 그래서 이어서 계속 읽을까말까 엄청 고민하였다. 첫번째 챕터가 찝찝한 기분이 가장 심했고 그 뒤로 넘어가면 이어질 사건들이 궁금해서 술술 읽게 된다.
 
마지막 결말은 조금 답답했다. 재인의 관점과 행동이 답답하기도 했고, 아내를 의심하면서도 제 발로 호랑이소굴에 들어가는 두번째 남편도 답답했고, 결국 주인공이 죄값을 치르지 않고 편히 목숨을 끊은 것도 싫었다.
 
작가 정유정이 인터뷰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SNS가 활성화하면서 집단적인 자기애가 느껴졌다. 나를 과시하거나 자기애나 자존감을 거의 강박적으로 추구하고, 행복에 대한 강박증을 갖는 것 같더라.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하는데, 그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불행이나 불운, 결핍이야말로 삶의 요소이고, 행복은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성과물이다. 인간은 행복이 아닌 생존을 위해 진화했다. 행복을 위해 진화된 게 아닌데, 왜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주입하려 할까."
 
요새 나도 행복에 대한 강박이 있는걸까? 그래서 안정적인 요건, 큰 불만 없는 회사를 그만둘 상상을 하는걸까???


 
 
이모는 할 수 있다고 했지만요. 제가 강단이 있기 때문이래요.
강단은 마음먹은 것을 끝까디 해내는 용기였다. 
 
아빠에게 직접 묻고 싶지는 않았다. 만약 즉석에서 생각해낸 약속이라면, 아빠가 당황할지고 몰랐다. 아빠가 당황하면 자신은 약속이 진심인지 의심하게 될 테고
 
그는 중병을 얻었다. 잠 못 이루는 밤마다 ‘본때를 보여주마’와 ‘내가 잘할게’ 사이를 오가는 병.
자신을 상대로 일진 놀이를 하는 아내에게 천불이 났다가, 아내를 그렇게 만든 건 밥통처럼 군 자신이라는 자괴감에 빠졌다가, 이러다 정말 이혼해버리는 건 아닐까 불안해하다가, 늦기 전에 처가로 가서 데려와야 한다고 안달하다가, 날이 밝으면 화장실 변기에 앉아 엉덩이를 씰룩거리면서 스러져가는 전의를 어렵사리 되살리곤 했다. 버텨. 아니면 뒈지든가.
 
딱 집어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화병이 났다. 머릿속에선 망상이 싹텄다. 결혼해 살면서도 그놈과 만났던 거구나…  그놈과 살려고 이혼히자고 했구나. 자유를 찾아간다더니, 그놈 이름이 자유였구나…
 
아이는 스스로 놀이에서 빠지게 됐다. 축구를 배우기 전에, 하고 싶은 것과 할 수 있는 게 다르다는 현실부터 배운 셈이다.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인간은 자신의 믿음에 따라 우주를 가진다.
 
‘예의 바름’의 좋지 않은 예였다. 유나가 가르쳤을 이 별난 예의는 상대를 멈칫 서게 만드는 데가 있었다.
 
그는 그녀를 여자가 아닌 다른 존재로 봤다. 가장 가까운 단어를 찾자면 ‘야채’ 정도나 될까. 달콤하진 않지만 가까이에 있고, 반하지는 않았으나 안전하며, 즐거움보단 이로움을 주는 존재.
 
이해도 용서도 안 되는 고백이었다. ‘오죽하면’으로 설명될 행동도 아니었다. 그녀는 의심스러웠다. 갑작스러운 고백 뒤에 숨은 저의가 무엇인지.
 
안다는 건 모르는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의미했다. 그중 어떤 유의 ‘앎’은 ‘감당’과 동의어였다.
 
쪼는 자와 쪼이는 자가 결판나는 순간은 최초의 싸움에서 이겼을 때가 아니다. 최초로 복종을 끌어냈을 때다. 더하여 모든 관계는 서열이 정해지는 순간부터 고착화된다.
 
어떤 사건이든 이면의 상황과 감정을 제거하면 본질만 남는 법이었다. 자신보다 타인에게 더 명백하게 보이는 것, 알고 있으나 인지하지 않았던 것, 행동이라 불리는 것. 그것에 대한 새삼스러운 각성이 그를 산산조각으로 부쉈다.
 
그녀의 대답은 친절하지 않았으나 모호하지도 않았다. 다만 ‘분명하다‘와 ’정직하다‘는 별개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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